외국인노동자와 함께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2024년 9월, 나란히 섬 7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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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5일, 공식적으로 첫 모임을 가졌던 미등록 이주 아동 모임, ‘우리 아이들’(이하 OK)이 1주년을 맞이합니다. 1주년을 앞두고 다음 달부터 어머니들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우리 회, 이 세 주체가 모여 그간 모임을 정리하고, 다음 발걸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에 앞서 우리 회가 OK를 만나게 된 시작을 되새겨 봅니다.
2020년, 코로나19
재난 이전부터 이주민 임산부 상담과 지원은 꾸준했습니다. 피상담자, 각 개인과의 만남은 길지 못했습니다. 임신을 알고 센터를 찾아 지원을 요청하고 아이를 출산한 후 1년쯤 관계를 유지합니다. 아이가 젖을 떼고 부모의 국가로 보낼 수 있게 되면 연락이 끊기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를 찾은 이주민 가족들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전염병 감염이나 미등록 체류에 따른 위험은 한국에서 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를 꺽지 못한듯합니다. 이전에 만나던 가족과 달리 한국에서 함께 살아가길 원했습니다. 당연히 이들과 저희의 관계도 달라져야 했습니다. 이루기 어려운 바람 위에 아이를 둔 베트남, 필리핀, 네팔 가정과 이전보다 더 긴밀히 관계를 쌓았습니다.
그 가운데 몇몇 가정에서 특별함을 발견합니다. 체류 조건 때문에 생긴 자신과 가족의 처지와 한계를 알고 있으나, 이 때문에 인간으로서 존엄을 버리지 않던 이들이지요. 요즘 빈곤 포르노를 경계하는 시민 의식 탓인지, 기부 수혜자의 얼굴이나 어려운 처지를 설명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후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줄었습니다. 그런데 생존이 중요하던 당시 몇몇 단체들이 미등록 이주 아동 가족의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이를 통해 그들의 사연을 알려 후원을 이끌겠다더군요. 이들이 미등록 이주 가정과 만나길 요청했습니다. 이를 가정들에서 고사하기 어려웠을 텐데 해당 조건이라면 받지 않겠다더군요.
많은 역사에서 보듯이 그 시기는 혐오하거나 원망할 대상을 찾기 쉬운때 였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나라에서 왔다고 한족과 조선족이 혐오 대상이 되었으며, 그러한 무지는 재난 이전에 한국에 거주중이던 이주민이 피부색이 다르다며 차별하기에 이릅니다. 이와는 반대로 선량한 시민들은 자신들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을 위해 구호 물품 등으로 후원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위의 가정에 이러한 선행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를 받아 같은 처지에 놓인 이웃 이주민에게 나누길 원했고, 또한 전해 받았으면 하는 이들을 우리에게 소개하였습니다. 자신만의 생존을 넘어 이웃과의 공존을 원했던 이들의 반짝거림이 더욱 빛나던 때였습니다.
2021년, 복스러운 소식
그렇게 복을 쌓았기 때문일까요? 2021년 4월 19일, 이들 가족들에게 복스러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장기 미등록 체류 이주 아동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발표됩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한정적이었습니다. 국내 체류 12년 이상이라는 조건을 달았으니, 우리가 만나던 가정들에겐 그림의 떡이었지요. 안타까워하던 우리에게 다음 해 1월 다시 소식이 들려옵니다. 구제 대상을 12년 이상 체류에서 6년 또는 7년으로 하향하겠다 합니다. 이에 기뻐할 가정도 있었으나, 반짝거리던 대부분의 가정은 다시 한번 씁쓸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에 더해 코로나19는 더욱 창궐하여 언제 끝날지 가늠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려움 커져 나가는 가운데 우리에게 희망은 단지 건강히 자라나는 아이들뿐이었습니다.
2023년, 생존
재난을 버텨 생존자로 남았지만, 아이러니하게 재난은 미등록 이주 아동 가정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막아주던 버팀목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엔데믹을 선언하자마자, 미등록 이주민 단속을 알려온 정부의 고시 앞에 몇몇 가정은 결국 보호자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남아있는 다른 가족들 또한 한국에서 생존을 포기할 참입니다. 그동안 생각해 오던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습니다. 부모들은 미등록 체류란 선택에 대해 책임진다고 하더라도, 아무 선택 없이 한국에서 출생한 아이들까지도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란 지점입니다. 아이들이 안전할 공간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어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자연에서 배울 수 있듯이, 태풍과 홍수와 같은 성난 바람과 물살도 여러 풀들과 나무가 함께 선다면 헤쳐 넘을 수 있습니다. 이들 미등록 이주 아동 가정이 함께 모여 자신의 생존뿐 아니라,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과의 안녕을 생각할 때입니다.
4월, 모임 준비 과정
이러한 생각을 몇몇 가정과 공유하였습니다. 이들 가운데 리더가 될 만한 가정의 보호자를 물색하였고, 여러 대상 가정을 만났습니다. 작년, 미등록 체류 아동 구제책이 발표된 이후 - 그 좁은 대상에도 불구하고 - 등록, 미등록 가리지 않고 아이를 가진 이주 가정이 많아졌습니다. 이들을 만나며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조직의 윤곽이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첫째, 나와 나의 가정뿐 아니라, 타자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둘째, 다문화 가정이나 등록 이주민 가정과 달리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미등록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자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두 가정이 떠오릅니다. 공교롭게도 두 가정 다 보호자가 네팔리였습니다.
5월, 사전 모임
이들 가정과 함께 어린이날을 맞아 한양도성 길을 올랐습니다. 앞으로 모임을 위한 사전 모임 격 만남이었습니다. 흔히 시민 운동이라 불리는 사회운동에서 당사자와 더불은 주요축은 자원봉사자입니다. 모임에서 보호자들이 체류나 인권 그리고, 한국어와 같은 학습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그 시간에 아이들을 돌봐줄 봉사자들이 필요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처음부터 걱정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해당 시기에 우리 회, 활동가가 주민조직 운동 수업을 수강했고, 그 가운데 트레이너를 통해 해당 활동에 적합한 단체를 소개받았기 때문입니다.
10월, 한살림서울돌봄사회적협동조합
“누구나 끝까지 존엄하게 살아가는 돌봄, 누구도 고립되지 않는 지역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 외치는 이들이 모인 단체에서 우리 모임에 함께 해주신다면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만나기 전부터 마음이 놓였습니다. 처음 한살림 돌봄 이사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 모임의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저희 모임에 대한 설명을 들은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답변을 주셨습니다.”아이는 모두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다”란 진리입니다. 인종이나 피부색, 체류 조건 등은 아이들 사랑 앞에 불필요한 수식어입니다. 우리 모임의 첫 번째 신조가 갱신되어야 할 터입니다. 우리 모임은 아이들을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이들이 만듭니다. 오늘까지 선생님들께서 이 문장을 그대로를 활동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11월, 해송지역아동센터
한살림 돌봄 선생님들 덕에 다시 한번 우리 이주 운동의 고갱이를 되씹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인 것처럼 이주민도 선주민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미등록 이주 가정 또한 여느 아이를 둔 선주민 가정처럼 종로구에 거주하는 우리 이웃입니다. 이를 확인하게 해준 것이 오늘까지 우리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해송지역아동센터의 품입니다. 해송에서 아무 조건 없이 단지 이웃이라는 이유로 우리 OK 모임에 공간을 내어주셨습니다. 덕분에 11월 5일, OK가 첫 모임을 치렀습니다. 함께 모임을 준비하던 두 가정을 중심으로 총 다섯가정이 모였습니다. 다음 모임에선 세 가정이 남아 체류와 인권에 대한 이야길 나눴습니다. 또한 모임의 규칙을 정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2월엔 한 가정의 아이 생일을 모두가 모여 축하하였습니다. 생일을 위해 아이들이 이리 많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 하시더군요. 생일잔치와 같은 큰 공간이 필요할 때마다 함께 우리 이웃되는 수수헌에서 자리를 내어주셨습니다.
2024년, 우리 아이들 Our Kid
1월엔 한 가정이 더 참여 의사를 밝힙니다. 자신과 이웃의 아이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냐를 묻고, 대답을 듣었습니다. 그리고, 보호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동의을 통해서 모임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각기 나이가 다른 아이 네 명이 모이니 자원봉사자가 더 필요하여 2명의 자원봉사자를 더 모집합니다. 베트남 유학생과 선주민 자원봉사자가 손을 거듭니다.
한국에서 부모나 친척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던 보호자들에게 양육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따라 2월부터는 3회차의 부모 교육이 시행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가 한글을 배우면 좋겠다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조언을 듣습니다. 한 아이의 한글 교실을 토요일에 따로 가지게 됩니다. 한글과 한국어가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들이 당황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가정통신문을 읽기 위한 어머니 한글 교육도 3월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봄을 맞은 4월엔 아이들은 안전한 놀이터에서 선생님들과 뛰어노는 시간을 가집니다. 6월엔 우리 회를 찾은 네팔리 유학생들과 함께 간담회와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창 고향 음식이 그리울 네팔 유학생들을 위해 OK 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동네 주민으로서 우리 지역을 찾은 유학생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자는 저희 제안을 흔쾌히 응해 주신 어머니들을 통해 손님 대접, 환대를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8월엔 강화도 소풍을 통해, 처음 바다를 보던 아이들의 감동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늘까지 모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그동안 우리 모임이 아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었을까요? 내일도 우리 모두가 안전한 공간의 일부가 되기 위해 함께 모여 지나온 시간을 살피려 합니다. 아이들이 전적으로 사랑받기 위해선, 어쩌면 부모님들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우리 회 모두 이곳에서 사랑받고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를 다음 한 달간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묻고 다음 발걸음을 준비하려 합니다. 이를 발표하는 모임을 11월에 가지려 합니다. 간담회 날짜가 잡히고 해당 날짜에 공간 대여가 가능하다면 여느 때처럼 수수헌에서 모이려 합니다. 그 자리에 OK 모임을 후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기억해 주신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함께 하셔서 우리 아이들이 안전할 공간을 하나 더 늘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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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봉사자 / 후원자
클린 하이킹
Arjun Baral, Magar Mane Pun, 김수곤, 김현재, 황튀엔
이주 아동 모임(OK)
고혜경, 이세라, 이은림, 이효진, 박테레사, 정미향, 조은
단체후원
공덕교회, 삭개오작은교회, 서울제일교회 루터회, 아산에이전시, 우리정공, 청암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향린교회
개인후원
- CMS
고유화, 구정희, 길재형, 김경곤, 김광래, 김귀주, 김명종, 김미미, 김민호, 김병호, 김연숙, 김영옥, 김영호, 김유석, 김은숙, 김은희, 김준환, 김현택, 김희숙, 남기창, 남혜정, 명노현, 박경태, 박상필, 박선희, 박우동, 박정미, 배창욱, 백수현, 서미란, 서미애, 서은주, 서의현, 석철수, 신광일, 신기호, 신정민, 안세원, 안세일, 안은미, 염영숙, 오민석, 오상철, 유광주, 윤봉근, 이경하, 이명주, 이미연, 이상임, 이애란, 이에리야, 이일항, 이정섭, 이정희, 이준호, 임창헌, 장근혁, 장영광, 장형진, 전영운, 전정희, 전창식, 전현진, 전혜향, 정영진, 정재헌, 조성근, 조성백, 조은아, 차경애, 차현숙, 최광수, 최수연, 최은선, 한국염, 한상옥, 한상희, 한정숙, 현정선, 황지연
- 통장입금
김수곤, 김영미, 이수빈, 채수일, Apta Pun, Indra Bhahadur Thapa, TB Gharti Magar, Tara Pun M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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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서기 위해 1997년 9월 창립된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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