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와 함께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2024년 12월, 나란히 섬 7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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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추운 날엔 센터 올라가는 길, 봉제공장 곳곳에서 수증기가 피어납니다. 이는 작은 공장 안에 "취익, 드르륵" 하며 바삐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왠지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줍니다. 마음 온도를 올려주는 또 하나의 가락은 아는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공장 앞을 지나갈 때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입니다. 인사 없이도 들려오는 노래로 그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골목을 채우던 분주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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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지고 있는 봉제 공장 지난주 볕이 따뜻하던 날, 센터 앞 벤치에 앉은 동네 주민들이 걱정을 늘어놓습니다. 봉제 생태계 최전선, 창신동에서 노동력을 경쟁력 삼아 버텨오던 소규모 봉제공장은 인터넷 상점을 가득 채운 중국발 값싼 의류 앞에 버틸 수 없었습니다. 이와같은 봉제 공장이 폐업하게 된 이유가 "더 이상 일을 배울 사람이 없어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대목에 닿았을 때입니다. 이야기를 듣던 우리 처지에선 자연스레 이웃, 이주노동자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선택의 기로앞에 놓인 이주민
이야기를 나누던 주민들 사이에 끼어 같이 일하던 이주민이 있었냐 물었습니다. 일을 잘하던 베트남 재단사나 싹싹했던 네팔리와의 추억 안엔 그들도 함께 일한 동료이며, 오늘도 봉제산업을 지키고 있는 노동자입니다. 같은 입장에 놓여있는 이주노동자 또한 이 자리를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은 날 수 있겠느냔 걱정 속에 어떤 이는 다른 지역 제조업으로 이직을 생각하거나, 또 어떤 이는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귀환을 선택한 이들
그래서인지 올해는 귀환을 준비하며 노동 상담을 요청한 봉제 노동자가 여럿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퇴직금에 대한 상담과 지원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머무는 봉제산업, 그 가운데 소규모 공장의 환경은 이러합니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을 하여도 봉제산업 특성상 낮은 공임이 책정되어 있어서, 임금은 최저 수준에도 머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한 비수기인 여름(7, 8월)과 겨울(12~2월)은 일감이 없는 실정입니다. 일이 귀하니 이를두고 공장끼리 경쟁하기가 일쑤입니다. 낮출 수 있는 것이 공임밖에 없으니 단가가 올라갈 수 없겠지요. 그러한 일마저 불규칙하게 들어오는 환경에서 봉제업 노동자들이 계약서를 쓰고 일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 가운데 말 그대로 손님, 객공에 머무는 노동자들의 사정은 어떠할까요.
귀환 전, 과제
퇴직금을 문의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객공인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임금이 아닌 작업량과 단가로 급여를 받는 프리랜서로 간주하는 공장 시스템 아래 선주민도 노동자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한 필리핀 커뮤니티의 이주민이 위 사례로 센터를 찾았습니다. 객공이라 하기엔 사업주와 종속적 관계를 맺고 있던 증거가 많아 그냥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의 요청에 따라 사업주와의 협의를 우선 삼고, 안될 시 고용노동부에 진정하기로 합니다.
사업주와의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실랑이를 벌여야 하나 걱정이 앞섰지만, 이주노동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박카스 한 통을 사서 공장 근처 커피숍을 찾았습니다. 인사와 함께 찾아온 이유를. 꺼냈습니다. "사장님은 해당 노동자를 객공이라 부르지만 매일 정해진 시간 출근하여 사장님께 관리받던 해당 노동자의 상황은 객공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란 대법원 판례를 기반한 이야기를 꺼낼 참입니다. 그러나, 퇴직금 이야길 꺼내자마자 어려운 공장 상황을 토로하더군요. 그리고, 퇴직금이 아니어도 전별금을 챙겨줄 생각이었다 합니다. 이후, 필리피노가 잘 지내고 있냐, 고향에 가면 뭘 할 생각이냐는 말들 속에 해당 노동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더군요. 이야기를 마치며 전별금이 아닌 퇴직금을 나눠서 갚겠다는 대답을 받았습니다. 해당 결과를 노동자에게 전했더니 수락하더군요. 그렇게 소식을 전하고 센터로 돌아오는 길에 "드르륵" 재봉틀 소리가 들리고 그 위에 한 생각이 얹어집니다. 봉제업이 호황일 시기에 둘이 만났더라면 오늘까지 함께 미싱을 돌리지 않았겠느냐는 상상입니다.
새 해를 앞 둔 봉제산업
현실은 저물어가는 봉제업 앞에 사업주와 노동자, 선주민과 이주민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80, 90년도 공임 그대로 10시간 넘게 미싱을 돌리는 노동 환경이 바뀌기 전엔 그 누구도 미래를 꿈꿀 수 없을 겁니다. 노동 그 자체가 존중받지 못한다면 찾는 사람이 없다며 문을 닫은 이음피음 봉제역사관처럼 창신동 골목에서도 미싱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봉제공장 안에 노동자를 손님으로 여기는 객공 시스템만이 독이라 할 수 없습니다. 봉제업의 어려움을 우리 모두의 고비로 보지 않고, 자본주의안에서 자연스러운 도태로 여기며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시스템 또한 그러합니다.
저물어가는 한 해 끝에 새로운 새 해가 다가옵니다. 이 어두움을 지나 밝아올 새 해엔 우리 이웃들의 활기찬 미싱소리가 이어지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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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봉사자 / 후원자
이주 아동 모임(OK)
김현재, 고혜경, 이명희, 이은림, 이효진, 정미향, 조은
단체후원
공덕교회, 삭개오작은교회, 서울제일교회 루터회, 아산에이전시, 우리정공, 청암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향린교회
개인후원
- CMS
고유화, 구정희, 길재형, 김경곤, 김광래, 김귀주, 김명종, 김미란, 김미미, 김민호, 김병호, 김연숙, 김영옥, 김영호, 김유석, 김은숙, 김은희, 김준환, 김현택, 김희숙, 남기창, 남혜정, 명노현, 박경태, 박상필, 박선희, 박우동, 박정미, 배창욱, 백수현, 서미란, 서미애, 서은주, 서의현, 석철수, 신광일, 신기호, 신정민, 안세원, 안세일, 안은미, 염영숙, 오민석, 오상철, 유광주, 윤봉근, 이경하, 이명주, 이미연, 이상임, 이애란, 이에리야, 이일항, 이정섭, 이정희, 이준호, 임창헌, 장근혁, 장영광, 장형진, 전영운, 전정희, 전창식, 전현진, 전혜향, 정영진, 정재헌, 조성근, 조성백, 조은아, 차경애, 차현숙, 최광수, 최수연, 최은선, 한국염, 한상옥, 한상희, 한정숙, 현정선, 황지연
- 통장입금
김수곤, 김영미, 이수빈, 채수일, Apta Pun, TB Gharti Magar, Tara Pun M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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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는
이주민과 함께 서기 위해 1997년 9월 창립된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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