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와 함께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2025년 4월, 나란히 섬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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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부터 시작했던 미등록 이주 아동 가족, 10 팀의 비자 신청 과정이 아직 진행 중입니다. 고지되지 않았던 추가 서류 제출 요청과 예상치 못한 우발사건에 기다림이 길어지지만, 희망에 찬 발걸음은 지칠 줄 모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미등록 이주민 사이에서 피했던 단어가 기대와 함께 떠오릅니다. "선생님, 저희 이제 고향에 갈 수 있지요?"
고향 가는 길 휴대전화, 화상으로만 보던 손녀, 손자를 직접 안아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얼굴이 그려지며 대답 대신 미소가 떠오릅니다. 그 뒤에 질문하나가 더해집니다. "그런데 G-1 비자를 받게 되면 바로 고향으로 갈 수 있나요? 아니면 다른 나라를 거쳐 돌아가야 하나요?" G-1이라 하니 해당 비자의 여러 유형 중 난민신청이 떠올라 그리 물었을 겁니다. 그런데, 위 경우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 신청하는 것인데, 다른 나라를 경유해서 가족을 만나냐고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돌아가는 길 몇 차례 저희가 언급(https://stib.ee/n6j8)했던 대로, 비정규적인 체류 상태에 머물던 이들 가족도 그러한 꼬임을 받았을 겁니다. G-1 비자를 신청하면 한국에 정규적으로 머물 수 있다는 이야기에 여러 G-1 사안 중 어떤 비자인지, 그 가운데 난민 신청이라면 본인들이 해당하는지 따질 것도 없이 응할 수도 있었겠지요. 더욱이 본인 국가 사람 이야기라면 더욱 혹했을겁니다. 이를 선택한 이주민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저희로서 그러한 결정은 절대 반대합니다. 우리가 목격한 대로 해당 비자 신청은 고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거쳐 오늘 우리와 함께한 이들은 이러한 유혹을 이겨낸 이들입니다. 이 가운데 몇 가정은 팬데믹 시기에 만나 오늘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재난 가운데 함께 아이들의 안녕을 바라던 사이에 동지애가 피었을까요. 네팔 커뮤니티는 우리 회와 함께 미등록 이주 아동 가정 모임, Our Kids(이하 OK)라는 자조 모임을 세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공간을 선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만들어가자는 취지아래서 말입니다. 국가는 아이들을 등록과 미등록으로 나누어 차별하지만, 지역 사회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동네 아이들을 환대하는 우리 동네 공부방과 커뮤니티 공간에서 OK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함께하는 준비 이러한 제안을 다른 나라 가정과 커뮤니티와도 나눴습니다. OK처럼 당신들 공동체가 위치한 지역 공부방에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부모님들은 체류나 인권, 한국어 등에 관한 공부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쉽게 나올 순 없겠지요. 이주민이라 해도 해당 국가 공동체, 그리고 각 개인이 처한 상황과 욕구는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들 가운데 우리가 도울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도출되고 있습니다.
초대에 대한 응답 한 국가 커뮤니티, 몇 가족은 미등록 이주 아동 구제 정책 신청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놈의 돈, 돈 때문입니다. 벌금을 감면해 준다해도 하루 살기 힘든 가족에겐 여전히 무겁기만 합니다. 구제책이 3년 유예되었으니,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준비해 보자는 이야기에 어떻게 대답할지 모르겠습니다. 일요일 겨우 하루 쉬거나, 일할지도 모르니 모임이 힘들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연장된 구제 정책을 두고 여러 커뮤니티를 방문하며 독려하던 중 벌금보다 무거운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염려하던 일 한 국가 공동체원이 아이 하나를 앞세우고 센터를 찾았습니다. 해당 국가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를 얼마 전 한국으로 데려왔다. 여행 비자를 가지고 방문한 아이가 한국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겠냐" 묻습니다. 우려했던 일이 이렇게 눈앞에 펼쳐질 줄은 몰랐습니다. 국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거나 국외에서 태어났어도 해당 시기만큼 국내에 체류한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처럼 사랑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리는 구제책에 이러한 접근도 있을 수 있겠지요.
헤어졌던 가족이 모여 함께 살고자 하는 바람이 염려가 될 수 있을까요? 애초에 E9을 가진 이주노동자의 가족 결합권을 인정하지 않던 시스템이 문제겠지요. 더욱이 국가와 국경이라는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오늘, 우리 운동이 꿈꾸는 것은 각자 시민이 아닌 세계인이란 이름 아래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세계인으로 살아갈 사회와 공동체에도 지켜야 할 가치, 그리고 제도와 규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당사자의 변 해당 이야기를 이번 구제책을 신청하는 가족들에게 물으니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고향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한국에 가면 비자를 받을 수 있냐는 문의가 빗발친다. 한국에 거주하는 주위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아무도 지금까지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느냐? 힘들지 않았냐? 묻고 고생했다는 사람들이 없다." 우리 회가 걱정하는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장 체류 허가가 아닌, 아이들이 자라며 겪은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켜 볼수밖에 없던 부모들이 겪은 세월을 헤아려 보았겠느냐는 지점입니다.
우리의 변 "가족 결합 이전에 아이가 이곳에서 행복하겠냐는 고민이 먼저입니다. 고향에서 자라던 아이가 어머니 손을 떠나 준비 없이 생판 모르는 나라에 와서 아버지를 따라 7년여를 유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역경을 거쳤을 때, 아이가 체류 허가를 받을지 아닐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좀 더 생각해 보세요."라 답변을 하고 이주민 가족을 보냈습니다.
얼마전 연장된 구제책을 소개하러 위 가족이 속한 공동체를 찾았습니다. 아직 아이는 한국에 있었고, 해당 공동체에 몇몇 구성원도 고향에서 아이들을 데려올 눈치입니다.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의견과 조언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그러나 당장 벌어질지 모르는 일 앞에 구제책에 참여한 열 가족의 답변 그리고 우리 회 여러 구성원과 상의했던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당신들이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막을 권리는 없다. 그러나 단순히 체류 목적을 위해 아이들을 데려온다면 우리는 이를 반길 수 없다."라 하고 "그런데 혹여나 아이들이 이 땅에 와서 살게 된다면, 아이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회가 인도적 지원은 할 수 있다"란 말을 덧붙였습니다.
반쪽자리 답변 애초에 가족 결합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주 아동에 대한 구제책도 상시가 아닌 한시적으로 결정한 이주민 정책이 품은 시스템적 차별이 없어지지 않고서야 우리의 변은 반쪽짜리밖에 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닭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까지 우리가 건넸던 이야기가 맴돕니다. 과연 저희 말이 최선이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그들에게 어떤 이야길 건네셨겠습니까? 말씀해주신다면 경청하겠습니다. 여러 관점과 의견이 필요한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경계 위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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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봉사자 / 후원자
미등록 이주 아동 모임(OK)
고혜경, 이명희, 이은림, 이효진, 정미향, 조은
단체후원
공덕교회, 삭개오작은교회, 서울제일교회 루터회, 아산에이전시, 우리정공, 청암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향린교회
개인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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