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와 함께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2025년 7월, 나란히 섬 85호 |
|
|
I 첫 만남 - "우리 엄마는 바보야" 이주운동을 시작하기 전, 우연히 한 이주결혼여성 가정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동행한 분이 어머니와 그 나라 말로 대화하는 사이,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 되었는지 아이가 집에 들어왔습니다.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어른들 이야기보다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함께 놀 참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아이와 끝말잇기를 하던 중, 낯선 단어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소주, 술병, 병신 - 아이 입에서 생각지 못한 것들이 튀어나옵니다. 그 말에 놀라던 중 아이가 어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바보야. 끝말잇기도 못해, 말도 못해"
동행자는 아이 말에 놀란듯 했지만, 어머니는 무표정했습니다. 아마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어를 배울 여유도, 아이에게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칠 시간도 없었을테지요. 아이는 아버지를 통해 한국어를 익혔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모자는 서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었을까요?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II 삶과 언어 사이 - 말보다 시급한 것들 그 후, 다른 이주 가정을 만나며 고민은 깊어졌습니다. 센터 일로 가정을 방문할 때면 자연스레 아이의 흔적을 찾게 됩니다. 많은 이주민이 가족을 구성하는 것조차 감히 상상하지 못하지만, 그 가운데에도 몇몇은 이미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삶의 무게 탓인지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아이를 위해 한국어를 배우셔야 합니다”, “1:1 수업을 제공해드릴수 있습니다.”라는 말보다, 그들이 더 듣고 싶어하는 건 밀린 월급 문제나 체류 조건 개선과 같은 당장의 생존과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미등록 체류 가정은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어, 미래를 위한 언어나 교육을 이야기하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꿈꾸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스스로 한국어를 배우고자 Our Kids(이하 OK)와 같은 자조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주민과 함께 서는 일을 지향하는 우리가 이들에게 멍석을 깔아주지 않을 이유가 있었을까요? 여러 단체와 마음을 모아 희망의 씨앗을 심기 시작한 지 어느덧 2년, 그 씨앗은 이제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III 자조의 힘- D 가족의 씨앗이 싹틀 때
올 해 초부터 시작했던 10 가족의 장기체류 이주아동 체류자격 지원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모든 가족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 가운데 처음으로 우리 OK에 속한 D 가족이 마지막 과정인 비자 발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가족은 특별했습니다. 서류작업이나 인터뷰 등 모든 절차를 스스로 해냈습니다. 활동가가 펜 한번, 입 한번 열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법무부 조사원이 가정방문 당시 가만히만 있던 저에게 "센터는 무슨 지원을 합니까?" 라고 물을 정도였으니까요. 앞으로 비자를 받고 정규적으로 살아갈 이 가정이 또 어떤 열매를 맺을지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 켠에선 "아이가 몇반이냐?"는 조사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던 가정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는 바보야’라던 아이의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즈음 되었을 그 아이와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IV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주민이 한국 사회에 들어오기 시작한지 30여 년, 그 안에서 자녀를 키우며 정착한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땅의 이주민 가족이 어떤 삶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뚜렷한 자료도, 분석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나라, 특히 이민의 역사와 데이터가 축적된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민 2세대의 문화동화(acculturation) 과정이 학문적으로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습니다. 그에 따르면 문화동화는 단순히 ‘미국 사회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자녀와 부모 간의 상호작용, 민족 공동체와의 관계 등 세대 간 복합적 관계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비록 이 이론이 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언어 단절과 문화 소외가 가족 해체와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V. 문화동화 이론으로 본 가족의 미래
|
|
|
<출처 - Legacies, Alejandro Portes, Reben G. Rumbaut> |
|
|
OK의 D 가족은 이 이론의 ‘선택적 문화동화’ 유형에 가깝습니다. 자녀와 부모가 모두 한국어와 문화를 익히고, 민족과 지역 공동체와도 유대가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세대 간 갈등 없이 건강한 가족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고, 자녀가 이중언어 구사자로 성장할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앞서 만났던 ‘끝말잇기 아이’의 가정은 불일치적 문화동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한국어도, 민족 공동체와의 연결도 없는 상태에서 언어적·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아이는 어머니를 이해하지도 존중하지도 못한 채 성장해왔을지 모릅니다. 지금쯤 청소년이 된 그 아이는 어머니를 ‘바보’라고 불렀던 그 감정에서 과연 벗어났을까요?
VI. 우리가 씨앗을 심는 이유 이러한 결과를 방치한다면, 무너지는 것은 단지 한 가정만이 아닙니다. 부모의 통제가 약화되고, 자녀는 또래 문화와 미디어에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비행이나 고립, 또는 범죄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연쇄적인 위기의 가능성은, 미국과 유럽의 사례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OK와 같은 당사자 중심의 자조모임이 더 많은 지역과 커뮤니티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고자 합니다. 당장의 성과는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품고 토대를 다지는 일, 즉 씨앗을 심는 일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됩니다.
현재, 우리 지역사회 곳곳에서 이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협력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주민·선주민 공동체 수수헌, 네팔 마가르 공동체 등은 지역 안에서 이주민과 선주민이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육 자원 해송지역아동센터, 살레시오 수녀회, 한살림돌봄 등은 이주 배경 아동들의 언어·학습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 지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보건 자원 함께아시아, 녹색병원 등은 언어와 신분의 장벽을 넘어 누구든 존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길을 함께 걸어온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정성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말이 닿고 마음이 통하는 가족의 가능성을 더 멀리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여정에 함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
|
6월 봉사자 / 후원자
미등록 이주 아동 모임(OK)
고혜경, 이명희, 이은림, 이효진, 정미향, 조은
단체후원
공덕교회, 삭개오작은교회, 서울제일교회 루터회, 아산에이전시, 우리정공, 청암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향린교회
개인후원
- CMS
고유화, 구정희, 길재형, 김경곤, 김광래, 김귀주, 김명종, 김미란, 김병호, 김연숙, 김유석, 김은숙, 김은희, 김현택, 김희숙, 남기창, 남혜정, 명노현, 박경태, 박상필, 박선희, 박우동, 박정미, 배창욱, 백수현, 서미란, 서미애, 서은주, 서의현, 신광일, 신기호, 안세원, 안세일, 안은미, 염영숙, 오민석, 오상철, 유광주, 윤봉근, 이경하, 이명주, 이미연, 이상임, 이애란, 이에리야, 이일항, 이정희, 이준호, 임창헌, 장근혁, 장영광, 장형진, 전영운, 전정희, 전혜향, 정영진, 정재헌, 조은아, 차경애, 차현숙, 최광수, 최수연, 최은선, 한국염, 한상희, 한정숙, 현정선, 황지연
- 통장입금
김수곤, 김영미, 한상옥, 이수빈
|
|
|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는
이주민과 함께 서기 위해 1997년 9월 창립된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
|
|
|